Thursday, October 3, 2013

전주 이씨의 유래


전주 이씨의 유래.


옛지명에 전주가 완산이었고 완산이씨가 전주이씨로 바뀌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전주의 지명유래는 마한의 원산성에서 유래합니다.
, () ''의 차음(借音)이어서 백제 때에는 완산(完山)이라 불렸으며,
통일신라시대인 756(경덕왕 15) '()'을 의역하여서
전주(全州)라고 고처지게 됩니다.

이씨 족보관련 글들을 읽다가 우연히 알게된 사실인데 전주이씨의
유래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이것을 밝히는 것도 역사의 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아래의 글은 전주이씨에 관련해서 어느분이 올려놓은 글을 퍼온겁니다..

읽어 보시고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全州 李씨의 유래

우리 나라의 이씨는 한국 자생(自生)의 이씨와 외국에서 귀화한 외래(外來)의 이씨로 나눌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처음에 성이 없다가 통치자, 곧 귀족부터 성이 있게 되었는데, 문자가 없었으므로 자연 중국 한자(漢字)로 표기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이씨는 본관이 237본이나 된다. 이 중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성은 경주이씨이고, 중국에서 귀화한 대표적인 이씨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며, 월남에서 귀화한 화산이씨(花山李氏)도 있다.

그러면 현재 24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우리 全州李씨는 어디에서 나왔는가?
여기에는 현재까지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이 두 가지 설 모두 그 근거가 모호하여 우리 全州李씨의 정확한 생성유래로서 여러 종현 종친들의 단언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中國)에서의 귀화설(歸化說)

작자 연대 미상의 <완산실록(完山實錄)>에는 우리 시조에 대하여 이렇게 씌어 있다.

「야사(野史) 실록(實錄)을 참고해 보면 우리 시조 사공 공의 휘는 한()이요, 자는 견성(甄城)이시다. 공은 본디 중원(中原 : 中國)에 살았는데, 태어나실 때부터 거룩하여, 총명이 과인하시고 재질이 특이하여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시었다. 공의 나이 15세에 한림원에 입학하시고, 계모 주씨(朱氏)가 매우 사납고 악했으나 지극한 효성으로 모시었다. 그래서 그 때 동요에 "오얏나무 밑에서 반드시 왕기가 나타나리라." 하더니, 마침 배가(裵哥)에게 모함을 받아 공이 바다를 건너 우리 나라로 오니, 그 때 나이 18세였다. 나이 약관도 되지 않아 문장이 비범하고 도덕이 탁월하여 인자한 기풍을 크게 떨쳤다. 불과 수년에 사람들의 칭송하는 소리가 조정까지 들려 신라의 문성왕(文聖王)이 불러 사공 벼슬에 임명하였고, 1년 남짓 다스리매 국정이 공평하여 모든 관원들이 교화되고 만백성들이 즐겼다. 그래서 태종(太宗) 10세손 김은의(金殷義)가 사위를 삼았다」
곧 사공 공은 본디 중국인으로 배씨의 모함을 받아 신라로 와 사공 벼슬에 올라 김씨를 아내로 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처 미상의 <이씨 득성의 유래(李氏得姓之由來)>란 글에서는 중국 이씨의 역사를 약술하고서 끝 부분에 「우리 全州李씨가 본래 중국 당()나라 황실의 후예라 하나, 그 파계와 원류를 밝힐 분명한 근거가 없고, 우리 시조 휘 한()으로부터 대대로 완산인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경주이씨(慶州李氏)로부터의 분적설(分籍說)

경주이씨는 신라 육성(六姓 : · · · · · )의 하나로 우리 나라 이씨 중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씨족이다.

<
경주이씨대동보> 총론편을 보면 경주이씨의 유래가 나온다. 자못 전설적이지만 신라 六성의 시조 6명은 모두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곧 육인천강설(六人天降說)이다. 경주이씨의 시조 알평(謁平)은 처음에 하늘로부터 박바위[瓢岩]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곳은 육촌(六村)중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인데 나중에 급량부(及梁部)로 행정구역 명칭이 바뀌었다. 서기 기원전 69(前漢 宣帝 地節 元) 3월 초하루에, 6촌장이 알천(閼川)의 바위 위에 모여 양산(陽山) 아래를 바라보니, 이상한 기운이 번개 빛 같고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양이 보여, 찾아가 보니 검붉은 알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6촌장이 그 알을 깨 보니 한 사내아이가 나타났다. 모두들 이상히 여겨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불렀다. 이 혁거세가 13세가 되자 기원전 57(前漢 宣帝 五鳳 元)에 이를 왕으로 삼고 나라 이름을 신라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신라를 건국한 공로로 알평은 아찬(阿餐)의 벼슬에 오르고 기원전 32(新羅 儒理王 8)에 이씨(李氏)를 사성(賜姓)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알평(李謁平)이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는데, 과거의 <경주이씨족보>에는 이알평의 먼 후손 이거명(李居明 : 蘇判公)을 중시조 1()로 삼아 계대수(系代數)를 따져 왔다. 그래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는 몇 대가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근 2백년 전 조선 말기 무렵에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족보에서 이알평부터 이거명까지의 대수(代數)와 이름이 나타나 36대의 명단을 찾아냈다고 한다.

(1
)알평(謁平)- (2) - (3) - (4)중가 - (5) - (6)문상- (7) - (8)수장 - (9) - (10)기정 - (11)미선 - (12)성립 -(13) - (14)계환 - (15) - (16)선장 - (17)기담 - (18)인흥 - (19) - (20)선정 - (21) - (22)태휘 - (23)우영 - (24) - (25) - (26)경지 - (27) - (28)원장 - (29)한로 - (30)계탕 -(31) - (32)사언
- (33)
→ (34)희두 - (35) - (36)거명
↘ (34)
진두 - (35)백전 →(36)
↘(36
) ()

위에서 보면 시조 이알평부터 36세손 이거명까지의 계통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이거명을 중시조 1()로 따져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 全州李씨와의 문제는 바로 34세 희두(禧斗)의 동생 진두(辰斗)와 그의 둘째 손자인 한()이 관계되는 것이다. 여기서 34세 진두씨의 약력에 나와있는 기록을 보면
"
공도 문장가로서 경문왕 때 임오년에 형 시중공과 같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시랑평 장사내사상병부령에까지 이르렀다. <세장보(世藏譜)>를 참고 하건대 이분의 손자 한()이 完山 李씨의 시조가 되었다더라." 이 기록에 의하여 이진두의 둘째 손자 한이 바로 우리 全州李씨의 시조 사공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합천이씨(陜川李氏) <상서공파세보(尙書公派世譜)>에는
(34
)진두(辰斗)-(35)백전(白全)-(36) ()-(37) ()으로 세계(世系)를 꾸며 놓고 이한(李翰)의 약력에 "대사공 은상서 어사중승 상상주국으로서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배위는 군윤 김은의의 딸이다. 全州李씨의 시조다" 라고 적어 놓았다. 여기서도 한()이 全州李씨의 시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경주이씨 족보와 다른 점은 공()과 한()을 형제가 아닌 부자 사이로 바꾸어 놓은 것이 이상한 점이다.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간 성으로 경주이씨 족보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은 원주이씨(原州李氏) · 재령이씨(載寧李氏) · 아산이씨(牙山李氏) · 우계이씨(羽溪李氏) 등이 있다. 이 성들은 분적(分籍)된 기록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全州李씨가 경주이씨에게서 갈라져 나갔다는 기록은 위에서와 같이 매우 애매하고, 또 그 기록이 한()씨의 약력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 조부의 약력에 기재되어 있는 점이 더욱 이상하다.

이상으로 볼 때, 우리 全州李씨가 중국에서 왔다, 또는 경주이씨에서 갈라져 나왔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애매 모호하다.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은 아마도 옛날 사대사상(事大思想)에서 연유한 야사적(野史的) 기록이라 세직(世稷 : 世直)의 세()자가 당나라 태종 리세민(李世民)과 같은 항렬자로 본 것이다. 또 경주이씨에게서 왔다는 기록은 경주이씨의 역사가 가장 오래니까 혹시 갈라져 온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경주이씨는 현재 이알평 시조로부터 오늘날 75() ()자 항렬까지 2천여년의 역사를 가졌고, 경주이씨의 중시조 이거명(李居明)과 전주이씨의 이한(李翰)은 동항렬(同行列)이므로 이분이 우리의 시조라면 연대는 비슷하리라 본다. 그러나 기록이 분명치 않으니 우리의 시조 신라 사공(司空) () 할아버님의 조상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문제는 현재로서는 단언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규명될 수 있는 후일을 기약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전주리씨에서 갈라져 나간 대흥이씨(大興李氏) 영해이씨(寧海李氏) 등도 있음을 첨언한다.

全州 본관의 유래
현재의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인 전주는 본래 백제의 완산(完山 : 比斯我·比自火)으로 서기 554(백제 위덕왕 1) 완산州라 하였다가 565년에 州를 폐하였다.

백제가 신라에 망한 뒤 685(신라 신문왕 5)에 州를 다시 두어 완산주라 하였다가 757(경덕왕 16)에 지금의 全州로 개칭하였다. 그 후 효공왕때 견훤(甄萱)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였다.
936
(고려 태조 19)에 후백제의 신검(神劍, 견훤의 아들)을 쳐서 평정한 후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라 일컬었다가 940(태조 23)에는 다시 全州로 환원하였다. 993(고려 성종 12)에는 그 고을을 맡은 벼슬 이름을 승화절도안무사(承化節度安撫使)라 일컫고, 995(성종 14) 12절도사를 둘 때 순의군(順義軍)이라 칭하고 강남도(江南道)에 예속하였다.

1018
(고려 현종9)에 이르러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라는 이름으로 고을의 지위를 올렸다가 그후에 또 전주목(全州牧)으로 개칭하였다. 1355(공민왕 4)에는 원나라의 사신 야사불화(야思不花)를 거두었던 곳이라 하여 그 지위를 낮추어 부곡(部谷)이 되었다가 1년뒤인 1356(공민왕 5)에 다시 완산부(完山府)로 복구되었다.

우리 태조 고황제 원년(1392)에 임금님 조상이 나신 고장이라 하여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격을 올렸고 1403(태종 3)에 전주로 다시 고쳐 부윤(府尹)을 두었고 세조 때에는 진()을 두기도 하였다. 그 뒤 줄곧 전라도의 감영이 이곳에 소재하였으며, 1895(고종 32) 郡이 되고 전국을 13도로 개편할 때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그 뒤 1935년 府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 市로 개칭되어 오늘날 인구 50만의 도시가 되었다.

完山은 원래 전주부의 남쪽 3리쯤에 있는 작은 산 이름으로 고덕산(高德山)으로부터 갈라진 산이었는데 전주의 안산(案山)으로 남복산(南福山)이라고도 하였다. 또 북쪽 10리쯤에 있으면서 마이산(馬耳山)으로부터 갈라져 내려온 전주의 진산(鎭山)인 건지산(乾止山)과 마주 바라보던 산이었다.

따라서 우리 전주이씨는 완산이씨(完山李氏)라고도 불렀으며, 현재도 기호에 따라 간혹 "완산"을 본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全州를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조선왕조 시대의 옛 문헌들에서도 일관되게 "전주"를 본관으로 사용하여 왔던 사실로 보아 조선 건국과 함께 "전주"본관 사용이 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아무튼 全州는 조선왕조의 시조가 탄생한 곳이며 시조 사공 공(휘 翰)의 묘역인 "조경단(肇慶壇)이 위치(전주시 덕진동 건지산)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 전주이씨와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

시조이래 대대로 전주를 세거지로 살아왔던 우리 선조들께서는 태조 고황제의 고조부인 목조(휘 안사"安社")부터 관향인 전주를 떠나 강원도 삼척(활기동) → 함경도 덕원원나라 와똥(斡東) → 적도(두만강 유역) → 함경도 경원 등으로 이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이 지역을 토대로 고려말 명장으로 성장한 태조 고황제(휘 성계"成桂")께서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국운이 쇠한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http://www.coo2.net/bbs/skin/nzeo_ver3/t.gif

Monday, April 15, 2013

피보다 진한 돈, 종중 땅 잔혹사


중앙일보 2013년3월30일자 인터넷판에 실린겄을 율산부로그에 옮겨서  우리 소희재 자손들은 이런일들이 없도록 경각심을 갖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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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중=공동 선조의 분묘를 보존하고 제사를 지내며 후손 간 친목을 다지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족단체다. 성과 본이 같은 하나의 종족 전체를 총괄하는 대(大)종중 안에 크고 작은 분파로 나누어진 종중이 있는데, 이 같은 지류(支流) 종중을 문중이라고 한다. 종중이 규약이나 관습에 따라 대표자를 선출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비법인 사단으로서의 단체성이 인정된다. 이에 따라 민사소송의 당사자로 인정되고 종중 명의로 부동산 등기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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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금 횡령" 피보다 진한 돈,종중 땅 잔혹사[중앙일보] 입력 2013.03.30 00:44 / 수정 2013.03.30 06:27

피보다 진한 돈, 종중 땅 잔혹사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조상이 물려준 땅을 후손이 말아먹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남보다 더 먼 원수가 됐죠.”

 종친들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연안 이씨 연성군파 종중회장 이창영(66)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종중회장 A(78)씨 등 3명은 2005년 경기도 용인의 임야 23만1400㎡(약 7만 평)를 종중회 공금 45억원에 사들인 뒤 종중회에는 67억원에 샀다고 보고해 차액 22억원을 빼돌렸다. 이 사건으로 A씨 등은 지난해 7월 검찰에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A씨 등이 쓴 공금은 2004년 판교신도시 개발로 종중 땅 4만 평이 한국주택토지공사와 성남시에 수용되면서 받은 120억원 중 일부였다.

사라진 70억원의 행방

이 땅은 1506년(중종 1년) 중시조인 연성군 이곤이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이었다.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왕으로 세운 반정의 공신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500년 넘게 내려오던 땅은 향토 유적으로 지정된 일부 묘역을 빼곤 모두 고층 아파트촌으로 바뀌었다. 100억원이 넘는 토지 보상금이 나왔지만 현재 종중에 남은 돈은 한푼도 없다. 용인 임야를 사고 남은 70여억원의 행방도 묘연하다. 종중회 측은 A씨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해 3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판결을 얻어냈지만 실제로 회수한 돈은 없었다. A씨 등이 이미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을 수년 동안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 회장은 “종중 재산을 어렵게 찾는다 한들 내 개인 몫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친들이 잘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종중 땅이 각종 개발사업에 따라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금싸라기 땅이 되면서 후손들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지난 5년(2008~2012년)간 종중 땅과 관련해 보상을 한 건수는 958건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385건으로 40% 이상을 차지했고 전북(82건)-충북(73건)-충남(72건) 순으로 많았다. 건당 평균 보상액은 9억3000만원이었는데, 인천(21억500만원)과 경기도(15억6300만원) 등 수도권 지역의 보상액이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이러다 보니 땅을 둘러싼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종중 사건을 전문적으로 맡아온 이재진 변호사는 “우리 사무실만 해도 한 해 서너 종중에서 10여 건의 사건을 의뢰한다”며 “수원·화성·용인 등 개발 호재를 탔던 경기 남부권 땅이 많다”고 말했다.

명의신탁이 화근

 종중 땅을 놓고 분쟁이 생기는 것은 대부분 종중 명의로 등기를 하지 않고 개인 이름으로 등기하는 ‘명의신탁’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재산세를 걷기 위해 개인 명의로 등기를 하도록 강요한 데서 비롯됐다. 명의자인 종중원이 사망했을 때 새로운 명의자를 찾아야 하는데 이때 정확한 근거 자료를 남기지 않고 서로 믿고 하자는 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훗날 명의자가 마음을 바꿔 본인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땅을 팔아버리기도 했다. 이를 다른 종중원이 알게 되고 종중 땅이라는 증빙자료가 있더라도 원 상태로 회복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난 뒤다.

 탐진 최씨 천곡파 종중에서 벌어진 사건이 좋은 예다. 이 종중은 광주광역시 도천동의 땅 3만9700㎡(1만2000여 평)를 종중원 7명 명의로 신탁관리해 왔다. 2002년 일부 종중원이 수천만원을 챙겨주겠다며 다른 명의자들을 매수해 명의를 넘겨받은 뒤 이 땅을 팔아버렸다. 종중회 측은 땅을 매각한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회장이 절차에 맞게 선출되지 않아 대표권이 없다”는 상대 측 주장을 받아들여 소를 각하했다. 4년여간 소송을 이끌어온 회장이 사망하면서 땅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은 흐지부지됐다. 전 종중회 임원 B씨는 “이 동네 사람들은 우리 종중 땅이라는 것을 다 안다”며 “이미 이리저리 쪼개져 팔린 땅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한탄했다.

골프장 개발로 조상묘도 훼손

땅 처분을 결정하는 총회 개최나 종중회장 선출 과정에서 종중 정관에 명시된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골프장 개발업체 S사는 2009년 강원도 홍천의 모 종중 소유 땅 18만1800㎡(약 5만5000평)를 매입했다. 그런데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 종중원 93명은 “소수 종친의 토지 매각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땅을 팔 당시 종중회가 전체 종중원 130여 명 중 41명의 동의만 얻어 땅을 팔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중회 임원은 “당시엔 종중회가 활성화되지 않아 연락할 수 있는 종중원에게 모두 연락했지만 50여 명만 모였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 중엔 당시 동의했던 종중원들도 포함돼 있다”고 반박했다. 묘지 이장 문제는 갈등을 더 키웠다. 봉분만 남겨두고 산을 깎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흙 기둥처럼 솟아 있던 묘지 15기가 사라지거나 훼손된 것이다. 업체 측은 “종중 대표들로부터 적법하게 토지를 매입했다”며 “묘지 연고자들에게 여러 차례 이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더는 공사를 지체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총회를 열 때 여성을 빼고 남성 종중원에게만 알렸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법원은 이미 2005년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한 바 있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중은 임야를 350억원에 팔아 성년 남자에게는 1억5000만원씩 지급하면서 미성년자와 출가한 여성 등에게는 각각 1650만~5500만원을 지급했다. 이에 출가한 여성 5명이 종중회를 상대로 종중회원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종중원 자격을 성인 남자로 제한한 것은 개인 존엄과 양성 평등의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성과 본이 같으면 성별과 무관하게 종중원이 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재진 변호사는 “원래 종중은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존재했지만 출가한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한 것은 종중이 상속을 위한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종중 분쟁을 줄이려면 총회 등 절차에 대한 정확한 법률 조언을 받으라고 권한다. 법무법인이 총회 소집을 대신 통지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또 절차대로 종중 재산을 처분한 뒤 공동 관리하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분묘나 납골당만 남기고 나눠 갖는 것이 갈등의 소지를 없앤다는 일부의 의견도 있다.

“우리 대에서 나눠 먹으면 안돼”

모든 종중이 공동 재산을 놓고 갈등하는 것은 아니다. 거액의 보상금으로 장학재단 등 사회적 사업을 하는 종중도 있다. 경기도 용인에서 350여 년간 종중 전통을 이어온 경주김씨 참관공파 하갈종중은 2000년대 초 종중 땅 16만5300(5만여 평)에 대한 보상금 60여억원을 받았다. 종중은 이 돈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임야 23만1400㎡(약 7만 평)와 600여 기 규모의 납골묘를 마련했다. 기금 일부는 종중원들의 복지를 위해 썼다. 종중의 65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월 20만원의 생활보조비를 지급하고, 아이를 낳은 종중원에게는 출산장려금 150만원을 준다.

종중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겐 매년 60만~150만원의 학비도 지원한다. 종중원뿐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고등학생 15명에게 한 해 60만원의 장학금도 주고 있다. 또 종중회관으로 산 5층짜리 건물에서 임대수익도 얻어 종중 운영을 하고 있다.

 많은 종중원을 설득해 보상금을 투명하게 운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종중회장이던 김학민(63)씨는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400여 명의 종중원을 일일이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수천만원씩 돈을 나눠 갖는 데 관심이 많았지만 김씨는 “지금 나눠 가지면 종중은 해체되고 말 것”이라고 설득했다. 수백 년 전 조상이 내려준 땅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지 우리 대에서 나눠 먹는 것은 옳지 않다고 김씨는 믿고 있다.

김소현 기자


Wednesday, March 6, 2013

"전주이씨 전저족보 홈페이지" 와 "뿌리"


"전주이씨 전자족보 와 : The book Roots of Alex Haley

전주이씨 전자족보 홈페이지 편찬위원회에서는 지난 3년간의 오랜 시간동안 모든 전주이씨의 역사적 씨족자료를 검토하고 영어로 번역 하였음은 물론 많은 경비를 들여 우리들의 숙원사업 이었던 전주이씨 영문 전자족보 홈페이지와 웹사이트가 드디어 편찬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이민 1세들과 한문과 한글을 잘 모르는 우리들의 후손들은
영어로 나의 뿌리와 핏줄을 확인하여 전주이씨 및 조선왕조에 관한 기록과 내가 어느 종파 몇 대손인지를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영문 홈페이지를 보시고 소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성 재 (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미 북가주 분원장)
상기 web 주소를 click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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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7 년도에 "Roots" by Alex Halely TV 연속극으로 방영 되여 전 미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적이 있었다. 자기조상 "쿤타 킨테" 가 노예로 잡혀와서 모진 고난을 겪었고 그 후예들도 똑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묘사해서 너무나 처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TV을 보다가 꺼버리고 끝까지 보지 못 하고 만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조상에 대하여서 알고자 하는겄은 누구나 당연 지사가 아닌가. 우리 전주이씨 족보는 가장 훌융하게 기록보존 되였으나 아무리 훌륭하게 기록 되여 있어도 외국에서 출생하고 교육받은 후세들은 읽기 곤란 하여서 미 북가주 분 원장 이성재 박사께서 심혈을 기울려 서 영문족보를 만든 것을 감사드리고 뿌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여기에 영문 족보 ( http://kms246.bizwon.co.kr/bin/minihome/index.html?seq=7254 ) 가 나왔으니  click 하여 열어 볼수 있음.

뿌리(Roots)는 미국의 흑인작가인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가 저술한 소설로서, 그의 조상 쿤타 킨테 에서부터 헤일리 자신에 이르기까지 7세대에 걸친 흑인 노예 가족사를 사회고발적인 시각에서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 가족의 일대기를 담은 이 소설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 셀러에 올랐고, 헤일리는 이 작품으로 '노예제도의 기록에 있어 중대한 기여를 했다' 는 점에서 퓰리쳐 특별상을 수상했다. 또한 후에 원작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에미상 5개 부문 수상, 골든 글러브 최우수 TV 영화상 수상 등의 결실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당시만 해도 다인종 사회라 가계(家系)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뿌리 찾기 운동을 고무시켰다고 한다.

사회복지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재조명하고자 했으며, 책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들을 통해 사회복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에 대해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이에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그로부터 생각해낼 수 있는 사회복지의 가치, 이념 등을 덧붙여 설명해나가겠다

.2. 줄거리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의 쥬플레라는 마을, 그 곳에서 헤일리의 선조인 쿤타 킨테는 어느 날 나무를 베러 갔다가, 노예상인인 백인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킨테는 수없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노예 감독자에게 발각되어 발이 잘리는 가혹한 엄벌을 받게 된다. 그 후 한 백인에게 팔려가 불구의 몸으로 밭일을 하며, 주인의 마차꾼으로 일하다, 벨이라는 노예와 결혼한다. 둘은 딸 키지를 낳고, 키지도 16살 때 노예로 팔려가 농
장 주인에게 겁탈 당해 아들 조지를 낳게되며, 이후로도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도서] 쉽게찾는우리별자리 (이태형, 현암사, 1993.10.01)

참고자료( 파일내에기재된참고자료목록입니다. )

1. 알렉스 P. 헤일리 저, [뿌리],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19962. 박석돈 저, 「사회복지」제135, 한국사회복지협의회, 19973. 장인협 외 저, 사회복지개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Roots



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

In 1976, Haley published 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 a novel based on his family's history, starting with the story of Kunta Kinte, who was kidnapped in the Gambia in 1767 and transported to the Province of Maryland to be sold as a slave. Haley claimed to be a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of Kunta Kinte, and Haley's work on the novel involved ten years of research, intercontinental travel and writing. He went to the village of Juffure, where Kunta Kinte grew up and which is still in existence, and listened to a tribal historian tell the story of Kinte's capture.[1] Haley also traced the records of the ship, The Lord Ligonier, which he said carried his ancestor to America.

Haley has stated that the most emotional moment of his life occurred on September 29, 1967, when he stood at the site in AnnapolisMaryland where his ancestor had arrived from Africa in chains exactly 200 years before. A memorial depicting Haley reading a story to young children gathered at his feet has since been erected in the center of Annapolis.

Roots was eventually published in 37 languages, and Haley won a Special Award for the work in 1977 from the Pulitzer Board. The same year, Roots was adapted into a popular television miniseries by ABC. The serial reached a record-breaking 130 million viewers. Roots emphasized that African Americans have a long history and that not all of that history is necessarily lost, as many believed. Its popularity also sparked an increased public interest in genealogy. In 1979, ABC aired the sequel miniseries Roots: The Next Generations, which continued the story of Kunta Kinte's descendants, concluding with Haley's arrival in Juffure. Haley was portrayed (at various ages) by future soap opera actor Kristoff St. JohnThe Jeffersons actor Damon Evans, and Tony Award winner James Earl Jones.

Haley was briefly a "writer in residence" at Hamilton College in ClintonNew York, where he began work on Roots. He enjoyed spending time at a local bistro called "The Savoy" in Rome, New York, where he would sometimes pass the time listening to the piano player. Today, there is a special table in honor of Haley with a painting of Haley writing "Roots" on a yellow legal tablet.



I

Tuesday, March 5, 2013

전주이씨 전자족보 와 뿌리(The book Roots of Alex Haley)





"전주이씨 전자족보 와 The book Roots of Alex Haley



전주이씨 전자족보 홈페이지 편찬위원회에서는 지난 3년간의 오랜 시간동안 모든 전주이씨의 역사적 씨족자료를 검토하고 영어로 번역 하였음은 물론 많은 경비를 들여 우리들의 숙원사업 이었던 전주이씨 영문 전자족보 홈페이지와 웹사이트가 드디어 편찬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이민 1세들과 한문과 한글을 잘 모르는 우리들의 후손들은
영어로 나의 뿌리와 핏줄을 확인하여 전주이씨 및 조선왕조에 관한 기록과 내가 어느 종파 몇 대손인지를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영문 홈페이지를 보시고 소견을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성 재 (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미 북가주 분원장)






상기 web 주소를 click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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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7 년도에 "Roots" by Alex Halely TV 연속극으로 방영 되여 전 미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간적이 있었다. 자기조상 "킨타 쿤테" 가 노예로 잡혀와서 모진 고난을 겪었고 그 후예들도 똑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묘사해서 너무나 처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TV을 보다가 꺼버리고 끝까지 보지 못 하고 만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조상에 대하여서 알고자 하는겄은 누구나 당연 지사가 아닌가. 우리 전주이씨 족보는 한자로 기록보존 되어서 아무리 훌륭하게 기록 되여 있어도 외국에서 출생하고 교육받은 후세들은 읽기 곤란 하여서 미 북가주 분 원장 이성재 박사께서 심혈을 기울려 서 영문족보를 만든 것을 감사드리고 뿌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여기에 영문 족보 홈페이지 ( http://kms246.bizwon.co.kr/bin/minihome/index.html?seq=7254 ) 가 나왔으니 click 하여 열어 보세요






 



 
목차


1. 들어가며..
2.
줄거리
3.
자유에의 갈망
4.
자유, 그 이면에는..
5.
생존권의 문제
6.
끝맺으며..




본문내용


뿌리(Roots)는 미국의 흑인작가인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가 저술한 소설로서, 그의 조상 쿤타 킨테에서부터 헤일리 자신에 이르기까지 7세대에 걸친 흑인 노예 가족사를 사회고발적인 시각에서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 가족의 일대기를 담은 이 소설은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 셀러에 올랐고, 헤일리는 이 작품으로 '노예제도의 기록에 있어 중대한 기여를 했다' 는 점에서 퓰리쳐 특별상을 수상했다. 또한 후에 원작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에미상 5개 부문 수상, 골든 글러브 최우수 TV 영화상 수상 등의 결실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당시만 해도 다인종 사회라 가계(家系)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뿌리 찾기 운동을 고무시켰다고 한다. 나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사회복지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재조명하고자 했으며, 책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들을 통해 사회복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에 대해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이에 책의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그로부터 생각해낼 수 있는 사회복지의 가치,이념 등을 덧붙여 설명해나가겠다.

2.
줄거리
서부 아프리카 감비아의 쥬플레라는 마을, 그 곳에서 헤일리의 선조인 쿤타 킨테는 어느 날 나무를 베러 갔다가, 노예상인인 백인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킨테는 수없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노예 감독자에게 발각되어 발이 잘리는 가혹한 엄벌을 받게 된다. 그 후 한 백인에게 팔려가 불구의 몸으로 밭일을 하며, 주인의 마차꾼으로 일하다, 벨이라는 노예와 결혼한다. 둘은 딸 키지를 낳고, 키지도 16살 때 노예로 팔려가 농장 주인에게 겁탈 당해 아들 조지를 낳게되며, 이후로도 그 후손들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참고자료 검색


[도서] 쉽게 찾는 우리 별자리 (이태형, 현암사,1993.10.01)





참고 자료 ( 파일내에 기재된 참고자료 목록입니다. )


1. 알렉스 P. 헤일리 저, [뿌리],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1996
2.
박석돈 저, 「사회복지」제135, 한국사회복지협의회, 1997
3.
장인협 외 저, 사회복지개론,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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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ts

In 1976, Haley published 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 a novel based on his family's history, starting with the story of Kunta Kinte, who was kidnapped in the Gambia in 1767 and transported to the Province of Maryland to be sold as a slave. Haley claimed to be a seventh-generation descendant of Kunta Kinte, and Haley's work on the novel involved ten years of research, intercontinental travel and writing. He went to the village of Juffure, where Kunta Kinte grew up and which is still in existence, and listened to a tribal historian tell the story of Kinte's capture.[1] Haley also traced the records of the ship, The Lord Ligonier, which he said carried his ancestor to America.

Haley has stated that the most emotional moment of his life occurred on September 29, 1967, when he stood at the site in Annapolis, Maryland where his ancestor had arrived from Africa in chains exactly 200 years before. A memorial depicting Haley reading a story to young children gathered at his feet has since been erected in the center of Annapolis.

Roots was eventually published in 37 languages, and Haley won a Special Award for the work in 1977 from the Pulitzer Board. The same year, Roots was adapted into a popular television miniseries by ABC. The serial reached a record-breaking 130 million viewers. Roots emphasized that African Americans have a long history and that not all of that history is necessarily lost, as many believed. Its popularity also sparked an increased public interest in genealogy. In 1979, ABC aired the sequel miniseries Roots: The Next Generations, which continued the story of Kunta Kinte's descendants, concluding with Haley's arrival in Juffure. Haley was portrayed (at various ages) by future soap opera actor Kristoff St. John, The Jeffersons actor Damon Evans, and Tony Award winner James Earl Jones.

Haley was briefly a "writer in residence" at Hamilton College in Clinton, New York, where he began work on Roots. He enjoyed spending time at a local bistro called "The Savoy" in Rome, New York, where he would sometimes pass the time listening to the piano player. Today, there is a special table in honor of Haley with a painting of Haley writing "Roots" on a yellow legal tablet.


Thursday, February 14, 2013

24절기의 유래와 시기



24절기의 유래와 시기



24절기의 유래와 시기 
인간이 월력(月曆)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농경사회에서는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농사를 짓기위해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음력의 24절기도 이런 바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4절기는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각각 여섯개 씩 자리잡고 있으며,
각각의 절기는 앞뒤 절기와 유기적인 연관성을 가지며 1년을 이룹니다.

24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
춘분점
(春分點,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부터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간격으로 나누어 24점을 정하였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천구상에서 태양의 위치와 황도가 0˚ 일 때 춘분,
15˚ 일 때 청명, ....., 300˚ 일 때 대한으로 정한 것입니다.
(24 × 15 = 360)



<봄의 절기>
01. 입춘(立春)_02월 04일 또는 05일 : 계절의 시작 봄에 들어섰습니다.
02. 우수(雨水)_02월 18일 또는 19일 : 내리던 눈은 그치고 비가 옵니다.
03. 경칩(驚蟄)_03월 05일 또는 06일 : 벌레들이 깨어나네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땅밖으로 나왔습니다.
04. 춘분(春分)_03월 20일 또는 21일 : 둘로 나눈 봄의 한 가운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습니다.
05. 청명(淸明)_04월 04일 또는 05일 : 따듯하면서도 맑은 그야말로 화사한 봄이네요.
06. 곡우(穀雨)_04월 20일 또는 21일 :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맞으며 새싹이 움틉니다.

<여름의 절기>07. 입하(立夏)_05월 05일 또는 06일 : 더위의 시작 여름입니다.
08. 소만(小滿)_05월 21일 또는 22일 : 식물의 푸르름이 조금씩 대지를 덮습니다.
09. 망종(茫種)_06월 05일 또는 06일 : 씨(종자)를 뿌려 한해의 농사를 시작합니다.
10. 하지(夏至)_06월 21일 또는 22일 : 여름의 한 가운데. 낮의 길이가 가장 깁니다.
11. 소서(小署)_07월 07일 또는 08일 : 작은 더위.
12. 대서(大署)_07월 22일 또는 23일 : 큰 더위.

<가을의 절기>13. 입추(立秋)_08월 07일 또는 08일 : 사색의 계절 가을입니다.
14. 처서(處署)_08월 23일 또는 24일 : 더위는 한 풀 꺽였습니다.
15. 백로(白露)_09월 07일 또는 08일 : 일교차가 커지면서 이슬이 맺혔네요.
16. 추분(秋分)_09월 23일 또는 24일 : 가을의 가운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 졌습니다.
17. 한로(寒露)_10월 08일 또는 09일 : 이슬도 차가워졌습니다.
18. 상강(霜降)_10월 23일 또는 24일 : 서리까지 내립니다.
<겨울의 절기>19. 입동(立冬)_11월 07일 또는 08일 : 추운 겨울에 접어 들었습니다.
20. 소설(小雪)_11월 22일 또는 23일 :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내렸습니다.
21. 대설(大雪)_12월 07일 또는 08일 : 눈다운 큰 눈이 내렸습니다.
22. 동지(冬至)_12월 21일 또는 22일 : 겨울의 절정. 추운 겨울밤이 왜 이리 긴지요.
23. 소한(小寒)_01월 05일 또는 06일 : 작은 추위
24. 대한(大寒)_01월 20일 또는 21일 : 큰 추위

24절기 소개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에 따라 특징지은 계절적 구분


24절기 외 절일 4대명절(설, 한식, 단오, 추석) | 삼복(초복, 중복, 말복)


입동에서 대한까지 봄부터 가을까지가 일하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쉬면서 다음해를 준비하는 계절로
입동·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 등의 절기가 있습니다.

19. 김장철 - 입동
상강과 소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8일경 입니다.
겨울 동안의 김치를 장만하는 김장은 입동을 기준해서 합니다.
김장은 입동 전 혹은 입동 직후에 해야 제 맛이 난다고 합니다.
입동이 지난지가 오래되면 얼어붙고, 싱싱한 재료가 없으며,
일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20.
 겨울의 시작 - 소설입동과 대설 사이에 들며 음력 10월, 양력 11월 22일이나 23일경 입니다.
이 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이 든다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는
다른 말로 불리기도 합니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갑습니다.
이 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그날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해서
외출을 삼가했으며 특히 뱃길을 조심했습니다.

21. 눈이 많이 내리는 절기 - 대설
소설과 동지 사이에 들며 음력 11월, 양력 12월 7,8일경 입니다.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뜻에서 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원래 재래 역법의 발생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상황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 꼭 적설량이 많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 날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에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는 속설이 전해오기도 합니다.

22. 작은 설 - 동지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도달하고
다음날로부터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고대인들은 이 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 대한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23. 1년 중 가장 추운 날 - 소한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2월, 양력 1월 5일경입니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 때가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있으나,
우리 나라는 소한 때가 가장 춥습니다.'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추위는 꾸어 다가도 한다'는 속담이 나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4. 24절기의 마지막 - 대한
24절기의 마지막 절후로 양력 1월 20일경을 말합니다.
대한은 음력 섣달로 매듭을 짓는 절후입니다. 원래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으로 갈수록 추워지며 대한에 이르러서 최고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는
중국의 지형에 근거한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경이므로
중국과는 차이가 있습니다.-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