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5, 2018

남아입지출향관

男兒立志出鄕關 若學不成死還來

내가 60 중반에 미국 유학길에 오를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다행이 당시 한미재단에서 유학생을 위하여 육군 수송선을 알선 해주어서 인천에서 출발 하여 미국 상항 옆에 오크 랜드 해군기지 25 거처서 오게 되었는데 수송선이 2 정도 되니까 인천부두에 접안이 안되니 유학생 다섯 명이 보트를 타고수송선 까지약 한시간을 간겄으로 기억 난다.

보트를 타고 가면서 머러저가는 고국산천 바라보면서 우리가 다시 고국 강산을 밟을 것인가 男兒立志出鄕關 若學不成死還來 하였으니 눈물을 글성 거리면서 상념에 잠겼든 생각이든. 그래도 병고 와 공부에 시달리면서 살아서 고향에 도라왔으니 나는 조상이 나의 건강을 지켜주어서 특히 할머니께서 제 건강을 생전에도 그러 하시였고 저승에서도 건강을 지켜주시어 학업을 마치고
오늘이 있게 해주신 조상님들에 감사드립니다.

男兒立志出鄕關, 남아로 태어나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났으니
學若不成死不還, 만약 배움에 성공하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埋骨豈期先墓地, 어찌 나의 뼈를 선영에 묻을 것을 기약하리오
人間到處有靑山, 인간이란 가는 곳마다에 청산이 있는데

시에서 청산은 원래 묘지의 뜻인데, 요즘에는 일본에서도 '푸른 나무가 무성한 것처럼 활약을 마음껏 있는 장소' 같은 뜻으로 많이 해석을 합니다. 번째 구의 不復還은 死不還이라고도 지었다고 하고, 번째 구의 何期는 豈期와 豈惟, 그리고 豈唯로도 지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해도 같은 뜻입니다.

시의 작자는 " 月性"이라는 사람입니다. 일본 막부시대 말에 살았던, 진종(眞宗) 스님인데, 1817년에 야마구치(山口)현에서 태어나서 1856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죽어서 선산에 묻히기를 소원 해서 내호를 栗山 (현 선산이 옛 밤나무산이었음) 으로 하고 율산 브로그도 만들고 했는데 지금 생각 하니 부질없는 욕망이오 도처에 청산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산에 무치고저 하는 이유는  자자손손 종손이 종중자산 관리, 제사 등 책임하에 유지 하고왔는데 어떻데 된건지 종손이란녀석이 결혼도 못하고 후사가 없고 할아버지로 받은 유산상속 재산을 동생들에 나누어 주면 종손의 의무를 이행할 후손은 없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으니말이다. 

그래서 내호를 "栗山" 에서 靑山으로 바꾸고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