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3, 2021

애이불교 수축지야(愛而不敎 獸畜之也)'

 

애이불교 수축지야’ - 사랑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란다

윤혜영 입력 : 2016.12.07 09:29 ㅣ 수정 : 2016.12.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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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짐승으로 자란다

내 아이만을 위한 사랑이 아이를 그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내가 사는 도시에서 지역민들에게 인기있는 몇몇 식당이 노키즈존으로 영업방침을 전환하면서 아이키우는 엄마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후끈하게 오르내렸다.

나 역시 한창 말썽을 부리는 네 살배기 딸아이가 있는지라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경청을 할 수 밖에 없다. 문제의 요지는 어느 식당에서 아이엄마가 남자아이의 소변을 물컵으로 받아 식탁위에 올려두고 갔기에 주인장이 미취학 아동 출입금지를 실행한 것이었다.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례한 어멈들을 통칭해 '맘충'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똥기저귀를 갈고 테이블 아래 숨겨두고 가거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이불이나 카펫들을 카트에 깔아두고 아이와 편안하게 쇼핑 후 구겨진 카펫은 아무데나 처박아 두고 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아이가 뛰어놀기 시작하고, 외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면서 휴일이면 가끔 키즈카페에 방문한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놀이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아이 혼자 놀라고 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해있는 부모들이 많다.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이른바 달콤한 죄책감이다. 어느날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테이블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다 몸에 뒤집어쓰고 뒤늦게 찾아온 부모가 황급히 찬물로 응급조치를 하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매시간을 아이에게 충실할 수는 없다지만, 위험한 곳에서 보호조치는 필수가 아닐까 한다.

미끄럼틀에서 혼자 놀던 아이가 뛰어내려 다리가 골절되어 키즈카페와 부모들 사이에 소송이 오가는 안타까운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두 경우 모두 아이를 돌보는 책무를 소홀히 여긴 탓이 크다.

휴일에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알밥을 먹으러 집근처 분식집에 종종 들린다. 스무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이 좋아서 간혹 들리는 곳이다.

그날은 이벤트성으로 국수를 29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알밥과 국수를 주문하고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디럭스 유모차 두 대를 위용차게 밀며 젊은엄마 두 명이 들이닥쳤다. 앞서 말했듯 그곳은 실내가 협소하기에 커다란 유모차가 통로를 가로막아 사람들은 테이블을 타넘거나 종업원들은 빙빙 둘러 음식서버를 했다.

걷는 아이와 기어다니는 아이 둘을 동반한 그 여인들은 내 뒤에 착석했는데, 몇가지 음식들과 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곤 아이두뇌 발달에 좋다며 2900원짜리 국수는 먹지도 않고 아이가 손으로 가지고 놀게 밀어주었다. 걸어다니는 남자아이는 외부에서 신고 들어온 신발을 신은채로 의자에서 방방 뛰었다.

두 여인은 수다에 여념이 없어 아이에게 전혀 제지를 가하지 않았고, 아기들은 국수를 사방팔방에 흩어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리곤 주문한 음식을 다 먹더니 어질러 놓은걸 그대로 놔두고 디럭스 유모차를 밀며 유유히 떠나버렸다.  타인의 행동에 무심하고 싶지만 그런 장면을 목도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런 인성을 가진 부모의 아이들이 나중에 뭘 보고 배우며 성장할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 했거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양을 익히지 못한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사회의 잠재적 민폐인이 되기 일쑤이다.

공부만 잘하면 뭐하겠는가. 배운 지식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자신과 타인을 헤치는 양날의 검이 된다. 소가 먹은 물은 우유가 되고, 뱀이 먹은 물은 독이 된다. 인자하고 현명한 부모가 키운 아이는 자라서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는 자신의 인생도 버거운 무능력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조선후기 문신 '윤기(尹愭·1741~1826)는 무명자집에서 '애이불교 수축지야(愛而不敎 獸畜之也)'라고 했다.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라는 것이다. 자녀가 앞으로 살게 될 인생은 부모의 올바른 사랑과 가르침에 달렸다. 가정은 첫 발을 내딛는 가장 작은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