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11, 2021

인생예찬(人生禮讚)

 인생예찬(人生禮讚)"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며 세심하게 살피는
나날 중에도 때로는 건성으로
지나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함과 곧고 바름을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포근한 햇살이 곳곳에 퍼져 있는
어느 날에도 마음에서는 심한
빗줄기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따스한 사람들 틈에서
호흡하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심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특별한 날에도 홀로 지내며
소리 없이 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재미난 영화를 보며 소리내며 웃다가도
웃음 끝에 스며드는 허탈감에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아 도취에 빠져
스스로에 만족함 중에도 자신의 부족함이
한없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할 일이
쌓여 있는 날에도 머리로 생각할 뿐,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일의 할 일은 잊어버리고, 오늘만을 보며

술에 취한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픈 날이 있습니다.


늘 한결 같기를 바라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 모습만 보인다고 하여
그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흔들린다고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이 늘 고요 하다면,
그 모습 뒤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거짓이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흔들려 보며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봅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희망을 품는 시간들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시간들 안에는,
새로운 비상(飛翔)이 있습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입니다.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롱펠로우의《인생예찬》중에서
옮겨온 글

Thursday, September 23, 2021

애이불교 수축지야(愛而不敎 獸畜之也)'

 

애이불교 수축지야’ - 사랑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란다

윤혜영 입력 : 2016.12.07 09:29 ㅣ 수정 : 2016.12.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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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짐승으로 자란다

내 아이만을 위한 사랑이 아이를 그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 내가 사는 도시에서 지역민들에게 인기있는 몇몇 식당이 노키즈존으로 영업방침을 전환하면서 아이키우는 엄마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후끈하게 오르내렸다.

나 역시 한창 말썽을 부리는 네 살배기 딸아이가 있는지라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경청을 할 수 밖에 없다. 문제의 요지는 어느 식당에서 아이엄마가 남자아이의 소변을 물컵으로 받아 식탁위에 올려두고 갔기에 주인장이 미취학 아동 출입금지를 실행한 것이었다.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례한 어멈들을 통칭해 '맘충'이라고 부른다. 식당에서 똥기저귀를 갈고 테이블 아래 숨겨두고 가거나, 마트에서 판매하는 이불이나 카펫들을 카트에 깔아두고 아이와 편안하게 쇼핑 후 구겨진 카펫은 아무데나 처박아 두고 가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아이가 뛰어놀기 시작하고, 외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나면서 휴일이면 가끔 키즈카페에 방문한다. 집에서는 할 수 없는 놀이기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아이 혼자 놀라고 하고 스마트폰에 집중해있는 부모들이 많다.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이른바 달콤한 죄책감이다. 어느날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테이블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려다 몸에 뒤집어쓰고 뒤늦게 찾아온 부모가 황급히 찬물로 응급조치를 하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매시간을 아이에게 충실할 수는 없다지만, 위험한 곳에서 보호조치는 필수가 아닐까 한다.

미끄럼틀에서 혼자 놀던 아이가 뛰어내려 다리가 골절되어 키즈카페와 부모들 사이에 소송이 오가는 안타까운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두 경우 모두 아이를 돌보는 책무를 소홀히 여긴 탓이 크다.

휴일에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알밥을 먹으러 집근처 분식집에 종종 들린다. 스무평 정도의 좁은 공간에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가격도 저렴하지만 맛이 좋아서 간혹 들리는 곳이다.

그날은 이벤트성으로 국수를 29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알밥과 국수를 주문하고 아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디럭스 유모차 두 대를 위용차게 밀며 젊은엄마 두 명이 들이닥쳤다. 앞서 말했듯 그곳은 실내가 협소하기에 커다란 유모차가 통로를 가로막아 사람들은 테이블을 타넘거나 종업원들은 빙빙 둘러 음식서버를 했다.

걷는 아이와 기어다니는 아이 둘을 동반한 그 여인들은 내 뒤에 착석했는데, 몇가지 음식들과 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곤 아이두뇌 발달에 좋다며 2900원짜리 국수는 먹지도 않고 아이가 손으로 가지고 놀게 밀어주었다. 걸어다니는 남자아이는 외부에서 신고 들어온 신발을 신은채로 의자에서 방방 뛰었다.

두 여인은 수다에 여념이 없어 아이에게 전혀 제지를 가하지 않았고, 아기들은 국수를 사방팔방에 흩어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리곤 주문한 음식을 다 먹더니 어질러 놓은걸 그대로 놔두고 디럭스 유모차를 밀며 유유히 떠나버렸다.  타인의 행동에 무심하고 싶지만 그런 장면을 목도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런 인성을 가진 부모의 아이들이 나중에 뭘 보고 배우며 성장할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 했거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소양을 익히지 못한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사회의 잠재적 민폐인이 되기 일쑤이다.

공부만 잘하면 뭐하겠는가. 배운 지식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자신과 타인을 헤치는 양날의 검이 된다. 소가 먹은 물은 우유가 되고, 뱀이 먹은 물은 독이 된다. 인자하고 현명한 부모가 키운 아이는 자라서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인재가 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는 자신의 인생도 버거운 무능력자로 성장할 수도 있다.

조선후기 문신 '윤기(尹愭·1741~1826)는 무명자집에서 '애이불교 수축지야(愛而不敎 獸畜之也)'라고 했다.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라는 것이다. 자녀가 앞으로 살게 될 인생은 부모의 올바른 사랑과 가르침에 달렸다. 가정은 첫 발을 내딛는 가장 작은 사회이다

Tuesday, April 13, 2021

계유정난과 기계부정 의 낙향

계유정난과 기계부정 의 낙향

1950년은 6.25 전쟁이 발발 해이다. 이전만 해도 우리집안에는 순탄하게 지내왔으나 혹독한 시련은 이해부터 시작 되였다. 악몽 같은 인공치하 3개월은 9.28 수복으로 종말을 했으나 계속 2 가뭄으로 벼농사를 지을 없으니 당장 식구들이 끼니를 걱정 정도로 악화 되였다.

이해에 수리조합 의물을 있는 논을 팔아서 문전옥답 이라고 봉섭의논자리 천수답을 샀으니 비가 금방 쏘다질듯 하다가 빗방울 뿌리고 마는 일이 2 연속 되였고 거기에다 큰누나 결혼 시켰지 나의 대학 진학은 엄두도 냈다. 지금도 하늘을 처다보고 한숨만 쉬던 때를 잊을수 없다.

1960 중반에 미국 유학길에 올은후 San Francisco 에서 버스를 타고 Kansas 3 거처 학교타운 까지 가는 도중에 Nebraska 에서 Kansas 까지 광활한 벌판에 뿌려지는 물을 보고 너무나 딴세상 같아서 당시 하늘을 보고 한숨만 쉬던 고국을 생가하면 하늘과 차이라고나 할가 부럽기 한이 없었다. 5~6월이 되면 우리 본가가 모내기를 했는지 걱정을 하니 동료학생이 말하기를 미국까지 와서 고국에 비가와서 모내기를 했는지 걱정 하는 사람 처음 보겠네 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하늘만 처다 보고 사는 신세가 되였는가 생각하게 되고 우리 족보사를 떠드러 보니 실마리가 완전이 아니나 풀리기 시작 했다.

대림도정의 아들이신 기계부정 (, 효전, 16대조부) 백파도정의 아들이신 옥계도정 (,현돈) 함께 남하하시였는데 종형이신 백파도정은 지금 연산으로 정착 하시고 기계부정은 성산면 산곡리로 정착 하게 되였는데 이유는 종친중에서 사육신들과 동문수학하고 학식이 있으니 수양대군이 단종복위세력인 종친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벼슬을 시켜줄려고 호출을 자꾸 하니 난처하게 되었다.

옥계도정은 농맹아로 자처하고 기계부정은 정신이상자를 거짓 흉내 내시다가 단종이 죽게되니 충신은 이군을 섬기지 않는다고 두사촌 형제가 야반도주를 해서 옥게도정은 연산에 남고 기게부정은 성산면산곡리로 운둔생활이 시작 되였다. 옥계도정은 처가가 연산에 있기때문에 그곳에 정착 하시고 기계부정은 어떤 연고로 성산면 산곡리 오시게 되였는지 족보에 기록이 없어서 궁금하기 이없다.

아버지 묘비 문을 보면 기계부정의 아버지 이신 대림도정 묘를 안양 미군기지 내에서 찾아서 산곡리로 이장 하신거로 기록을 보면 기계부정 께서 안양근처에 사셨던겄으로 추정 된다 당시 기계부정 게서 남하를  하시였으면 후손들이 안양 근처에서 거주하였을 텐데 지금 부동산 시가로 치면 하늘와  차일  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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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1453(계유년), 후에 세조로 즉위하는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세종 문종 고명 대신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후 단종 폐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장자 승계 원칙을 무시한 정통성과 능력도 부족하고 업적도 없는 막내 아들 이방석 세자로 삼은 문제라고 들고 일어나서 어느 정도 반란을 일으킬 명분은 있었던 무인정사, 폭정을 일삼는 연산군 권좌에서 몰아내야 된다는 아주 확실한 정치적인 명분이 있었던 중종반정, 집권 이후는 막장이지만 적어도 반정 당시에는 폐모살제 실정을 일삼은 광해군 몰아내야 한다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던 인조반정과는 달리, 계유정난은 단종 정통성도 완벽하고 폭정이나 실정을 일삼은 적도 없었는데다가 어쨌든 세종과 문종의 고명 대신으로서 단종을 보호하는 입장에 있던 신하들을 죽이고 단종 귀양보냈다가 끝내 죽였기[7] 때문에 반정을 정당화할 명분이 없었다.

특히 당시는 조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고 성리학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후였기 때문에 많은 반발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세조 정통성은 이후 조선의 기득권을 잡게 되는 사림 세력에게 비판을 받게 된다. 연산군  무오사화 원인으로 걸린 조의제문 결국 문제에서 파생되었다.

'
정난' 政亂(정계의 혼란) 아닌 靖難(난리를 안정시킴)인데, 일단 김종서 황보인안평대군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것을 수양대군이 역쿠데타로 수습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조금 확실한 의미와 당시 정황을 살펴보면 "수양대군의 명분이 없는 쿠데타"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돌이켜 바르게 한다는 의미의 반정(反正)이라고까지 미화되지 않은 것은, 중종반정 직전의 연산군 인조반정 직전의 광해군 곧바로 끌어내려진 것과는 달리 단종은 후일 사육신 실패로 인해 노산군으로 강봉되기는 하였어도 쿠데타 직후에는 끌어내려지지 않고 임금으로서 수양대군에게 양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