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4, 2022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영어Anti-intellectualism) 또는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 지성지식인지성주의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말하며, 주로 교육철학문학예술과학 쓸데없고 경멸스럽다는 조롱의 형태로 나타난다지성주의 반대어이다. 또는, 학계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기에 실패한 자칭 지식인들을 반지성주의자라고 하기도 한다. 다만 이때에는 사이비 지식인(pseudo-intellectualism)이라는 표현이 더욱 흔하게, 더욱 정확한 의미로 사용된다.

대중을 중심으로 담론에서, 반지성주의자들은 정치상·학문상 엘리트 맞서는 대중을 옹호하는 사람을 자처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배운 사람들은 절대 다수의 관심사와 유리된 계층이며, 대중과 유리된 사람들이 정치에 관계된 담론과 고등교육을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반지성주의는 전체주의다운 독재정체에서 정치에 관계된 이견을 압살하려고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다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따위에서 나타나는 국가사회주의도이칠란트노동자당 포퓰리즘 레토릭 반지성주의를 매우 흔하게 나타낸다. 반지성주의의 극도에 도달한 정치에 관계된 형태는 1970년대  포트 크메르 루주 정권 치하의 캄보디아(당시 국호 민주 캄푸치아)에서 나타났다.[1]

또한 종교에 딸린 반지성주의[2] 과학 바탕에서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사실들을 공격해야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과학의 바탕에서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지식의 습득을 일부러 차단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부 근본주의 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창조과학 지적설계 그것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예이다. 이들은 과학의 바탕에서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하거나 이것을 교육받은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며[3][4][5], 관찰 가능한 사실인 진화 비롯한, 과학의 바탕에서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지식의 습득을 일부러 방해하는 일을, 예를 들어 스콥스 재판 같은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반지성주의가 극단화해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 같은 사회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6][7]

 

 과학적 근거를 배격하며 백신 거부 운동을 벌이는 유명인들도 마찬가지다.

현대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처럼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로 불린다. 시민들의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정보의 진위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환경에서 왜 탈진실과 반지성의 흐름이 거세진 것일까. 정보기술 환경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분서갱유종교재판정치범 처형 등 역사엔 반지성적 상흔이 가득하지만 본격적으로 반지성주의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시대는 민주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가 보편적으로 수용된 근대 이후다나치 독일스탈린주의중국의 문화혁명미국의 매카시즘유신독재의 긴급조치 등이 반지성주의의 대표적 사례다코로나 치료법으로 소독제 인체 주사를 검토해보자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이다.

<전문가와 강적들>의 저자 톰 니컬스는 인터넷 환경에서 사람들은 “나도 너만큼 알아”라며 전문가를 무시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은 지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지적 수준이 동등하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을 지니게 됐다”고 말한다. 뉴욕대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실이 우리 가치와 충돌할 경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며 인터넷을 배경으로 지목한다.

진실은 힘과 선전이 아니라 충분한 투명성이 제공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과학은 논문 공개, 동료 평가를 통한 공개 비판과 검증을 핵심 도구로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붙일 뿐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새 정부 (윤석열 정부) 가 진정 과학과 진실을 통한 반지성주의 극복을 바란다면, 더 많은 투명성을 제공하고 검증과 비판 수용적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각주[편집]

  1.  Harry Hobbs (2011년 10월 29일). “Trial of the Khmer Rogue”. 《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student paper》. 2012년 4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7월 17일에 확인함While the violent anti-intellectualism of the Khmer Rouge certainly forced their hand initially
  2.  Massimo Pigliucci (2005년 1월 12일). “Science and fundamentalism”. 《EMBO reports》. doi:10.1038/sj.embor.7400589. 2018년 7월 23일에 확인함as I have tried to argue above, both anti‐intellectualism and anti‐science fundamentalism are rooted in issues of ethics and religion
  3.  정한철 (2014년 7월 25일). '질문 말고 일단 믿어 봐' 기독교 반지성주의”. 《뉴스앤조이》. 2018년 7월 23일에 확인함.
  4.  권대원 (2014년 7월 25일).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기독교를 욕망의 종교로 변질시켰나?”. 《ㅍㅍㅅㅅ》. 2018년 7월 23일에 확인함.
  5.  로널드 L. 넘버스 (2016). 《창조론자들》. 새물결플러스. 304쪽. ISBN 9791186409558(홍수지질)학회(DGS)의 특별위원회는 너무도 놀라운 성격의 연구를 수행중이기에, "그 내용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를 일체 금지한다. 상황은 아주 미묘하고, 그 주제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발표했다. 현장에 있는 DGS 연구자들은 "비우호적인 과학자들" 출신의 스파이들을 경계했고, 지역 농부들에게 새로운 화석의 흔적을 찾으면 100달러씩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것은 모든 증거를 "비밀에 부치기 위한" 것이었다.
  6.  “한국의 과학계가 창조설자들에게 굴복하다”.
  7.  “한국 과학계가 창조설에 승리하다”.

Wednesday, March 16, 2022

여조삭비(如鳥數飛)

'여조삭비'(如飛)鳥數 

#①의미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 

1.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 

#②한자풀이 如 : 같을 '여' 鳥 : 새 '조' 數 : 자주 '삭' 飛 : 날

 맹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머니의 교육열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하여 자식을 올곧게 키우려고 세 번이나 이사를 해 가면서 교육환경 만들기에 애를 썼는가하면,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도록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 맹자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 맹자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 공부시켜 큰사람으로 만들려는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공부는 마쳤느냐?” “아닙니다.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칼로 자른다. 맹자가 놀라서 묻는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네가 공부를 중단하고 오는 것은 내 오랫동안 고생하며 짜던 베를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맹자는 그길로 다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여 공자에 버금가는 인물이 되었다. 논어의 학이 편에 여조삭비(如鳥數飛)란 사자성어가 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날갯짓을 반복하여 배우기를 끊임없이 하고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퇴계 선생도 노년으로 접어들 즈음 자신이 선택한 학문을 배우면서 삶을 마치겠다는 학이종신(學以終身)의 신념을 토대로 실천해 나갔다. 오늘날의 사회는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래서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배움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과거 수백 수십 년 사이에 일어났던 변화가 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질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두뇌의 회전속도는 느려지고 새로운 지식은 더 빨리 습득해야 하니 피로감을 느낀다. 변화가 눈에 보이는 물질의 형태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사회질서도 바뀌고 인간을 얽어매는 규정도 바뀌고 살아가는 방식도 새롭게 바뀐다. 

알면 편리한 전자제품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사용법도 자꾸 달라진다. 따라서 더불어 잘 살아가려면 새로운 것을 배워서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한 종도 아니요,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다. 다만 변화에 잘 적응한 종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어느 연설회장에서 “바꿔라! 자식과 마누라 내놓고 다 바꿔라! 그렇지 않으면 10년 이내에 삼성이란 이름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의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하였다. 

우리말에 ‘구들 장군’이니 ‘우물 안 개구리’니 하는 말이 있다. 밖에서는 힘도 쓰지 못하면서 집안에서만 큰소리친다는 의미로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이나 사는 공간만을 알고 다른 주변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지식의 바다는 넓고도 넓다. 자신이 최고가 아니다. 시간과 환경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마음과 귀를 열고 돌아보자. 순간순간의 변화에 깨어 있어서 당당히 맞서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배우고 익혀 나가야 한다. 살아갈 날이 중요한가 살아온 날이 중요한가? 영국의 노벨상 수상 작가 버나드 쇼가 1950년 95세로 임종을 앞두고 묘비에 새겨달라고 유언으로 남겼다는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란 비문이 주는 의미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Saturday, February 12, 2022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글자, 정성성 “誠” 자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글자, 정성성 “誠”

내가 어렸을 때 사랑방에 손님이 오시면 아무개 어른이시다 인사 들여라, 아버지께서 말씀 하시면 납죽 엎드려서 절하면 손님이 그놈 눈빛이 반짝 거리는 것을 보니 아주 총명 하겠구나 하고 덕담을 하시지요. 아버지께서는 보통은 됩니다. 하고 응답 하는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범재에 속 하지만 수재들과 경쟁 하려면 엄청 더 많은 노력을 해야지 그리고 좀 더 성실이 더 노력해서 살아가면 좀 더 낳은 삶을 사라가지 않을 가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여기고 있다. 내 후손들 에게 내가 살아온 성실한 삶을 이어주기 위해서 한 손자 이름을 “誠孝” 여기서 효자는 학열자 로서 익안 대군 21대 손을 의미하고 또 하나 손자는 “至誠”으로 작명 해주었다.

둘 다 미국에서 출생 했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터득 못하면 무순 소용이 있겠냐 면서도 나의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중요한 글자 가 정성성자 () 라는 것을 강조 하고 싶어서이다.

그 당시 6.25 동란 때 우리 학우들이 250명 정도 학도병으로 징집 되어서 96명의 전사자가 나왔고 1.4 후퇴 때 제2국민병 으로 징집 되여서 고초를 당 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군 입대 기피현상이 있었다. 대학에 가면 4년 징집이 연기 되니까 누구나 할 겄없이 소팔고 논팔고 해서 대학에 보냈던 시절이 이었다.

 

나는 동란 때 중 5학년을 3개월 다니고 학제가 개편돼서 고 3년을 3개월 다니고 1952 3월에 졸업을 했는데 대학을 못가도 징집 년영이 않되여서 집에서 고된 무임 노동자가 되었다 거기다가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아버지로부터 매일 야단이나 맞고 하니 살맛이 안났다. 이럴 바에야 죽던 살던 군대나 가자 하고 육군사관하교 지원서를 써 갖이고 성산 지서에 가서 신원보증서을 맡으러 갔는데 순경이 놓고 가라고 해서 그냥 놓고 와 버리고 다시 찾으러 가지 않했디.

어머니 와 할머니 는 군대가면 다죽는다고 야단이시고 내 인생 순리대로 살아야지 하고 다시 지서 가서 신원보증서을 찾으러 안 간겄이 행인지 불행인지 알수 없으나 그당시 군대 기피현상 때문에 육사 지원자가 없어서 3~4 차 모집 광고가 났었다. 그당시 휴전전(52 년) 이라서 전시 상황이 불리 하면 4년제 생도라도 수시라도 일선에 배치 하는 위기상황 이였다


고된 무임 노동자 생활 2년이 되니 이제 군대 갈 적년기가 되었다. 집안에서도 이젊은 노동자를 걱정 해주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중앙대학교 이리 분교에 약대를 들어가게 되었 는데 일연후 약대가 이리에서 철수를 해서 본교 흑석동 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논 판돈이 있어서 일학년 두 번 등록금과 2학년 일 학기 등록금은 제 기한 내에 내였다. 그후 부터는 등록금을 제때 내보지 못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겄은 모든겄을 성실 하게 처신 하니 등록금을 꾸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겨우 졸업을 하게 되었다. 이친구 (최우식)는 현재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데 내 인생의 은인이여서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친구이다. 그리고 나의 선생님 (韓治善교수님)복이 있어서 미국에 가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시어서 다 감사할 따름이다.

외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가다가 힘이 부처서 놓아 버리면 세상이 끝나는데 힘들게 고생을 하나 하고 놓아 버릴까 도 마음 먹은적이 있었다. 그러나 성실하게 사라가면 즉 至誠이면 感天 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 이다. 이말은 내가 직접 터득 했기 대문이다 司馬光 선생이 말 했기때문이 아니다. 이 친구의 도움이 없었으면 졸업을 못했을 겄이고 오늘이 없었을겄이다. 내가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은말은 "간절한 소망 이 있으면  꼭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갖이고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겄이다."(심상사성(心想事成)

문헌을 찾아보면 자치통감 (自治通鑑) 12 세기반 북송시대에 정치가 요 학자로 이름난 사마광(司馬光 1019-1986) 이 편찬했다.)에게, 어느 날 "유인세"라고 하는 제자가 스승을 향 하여 물어보았다. "중국에는 수만자의 글자가 있습니다. 그중애서 딱 한자만 취하라면 선생님 께서는 어느 자를 택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사마광 선생은 잠시의 망설림 없이 즉시 붓을 들어 바로 정성성 () 자 을 썻다 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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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유가(儒家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 유학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밝혀주는 철학적 중요 개념으로 진실성실정성 등의 의미를 지니면서 우주() 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면서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우주의 근본 원리가 ()입니다.

이런 까닭에 () 핵심사상으로 삼고 있는 ‘중용’에서는 “성은 하늘의 도리이며 성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誠者 天之道誠之者 人之道)”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가철학에서 () () 내외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면의 도덕적 근원이며() 성에 도달하기 위한 외부적 성찰과 반성 등의 방법을 의미한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 우리는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중용’에서는 ()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선을 선택해서 놓지 않는 (擇善固執)”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 삼강령 팔조목의 성의(誠意)장에서는 뜻을 진실하게 하는 방법으로 무자기(毋自欺) 신독(愼獨)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자기(毋無自欺)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고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도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택해서홀로 있을 때도 삼가며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 이룰  있습니다

주자는 () 하늘의 () 인간행위의 근본으로 보고“성 이후에 경을   있다는 것은생각이 참된 이후에야 마음을 바르게   있기 때문이며(이후에 ()   있다는 것은생각이 비록 참되지 않지만 항상 두려워하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성에 나아갈  있다”고 했습니다() 투철하여 지극한 경지에 이른 것이 ()이므로결국  공부의 최종 목표는 성에 이르는 것이며 여기에 이르는 것이 수양의 궁극적 목표라   있다는 것입니다.

 

 

Monday, October 11, 2021

인생예찬(人生禮讚)

 인생예찬(人生禮讚)"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며 세심하게 살피는
나날 중에도 때로는 건성으로
지나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함과 곧고 바름을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포근한 햇살이 곳곳에 퍼져 있는
어느 날에도 마음에서는 심한
빗줄기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따스한 사람들 틈에서
호흡하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심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특별한 날에도 홀로 지내며
소리 없이 울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재미난 영화를 보며 소리내며 웃다가도
웃음 끝에 스며드는 허탈감에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아 도취에 빠져
스스로에 만족함 중에도 자신의 부족함이
한없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할 일이
쌓여 있는 날에도 머리로 생각할 뿐,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일의 할 일은 잊어버리고, 오늘만을 보며

술에 취한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픈 날이 있습니다.


늘 한결 같기를 바라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 모습만 보인다고 하여
그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흔들린다고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의 마음이 늘 고요 하다면,
그 모습 뒤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 거짓이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흔들려 보며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봅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희망을 품는 시간들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시간들 안에는,
새로운 비상(飛翔)이 있습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입니다.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롱펠로우의《인생예찬》중에서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