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4, 2011
있는 그대로가 좋다 (법정스님의 글)
온 천지가 꽃이다. 풀과 나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철 따라 꽃이 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제 철이 와도 꽃이 피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끔찍하고 삭막하겠는가.
이 어디서 온 눈부신 꽃들인가. 꽃은 하루 아침에 우연히 피지 않는다. 여름철의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그리고 모진 겨울 추위 속에서도 얼어죽지 않고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세월을 꽃으로 열어 보이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입만 열면 경제와 돈타령만 늘어놓느라고 자신이 지닌 아름다운 속뜰을 열 줄을 모른다. 경제에만 정신을 빼앗겨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물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성이 소멸되어 간다고 걱정한다. 사람의 감성이 메말라간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인간성을 이루는 감성을 키우는가. 사람이 타고난 본성을, 그리고 사람다운 특성을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철 따라 꽃이 피어나도 볼 줄을 모르고 달이 뜨는지 기우는지 자연현상에 아예 관심이 없다. 이것이 무엇에 홀리거나 쫓기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증상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의지해 살아가는 원초적인 터전이다. 생명의 원천인 이런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점점 인간성이 고갈되고 인간의 감성이 녹슨다. 그래서 박제된 인간, 숨쉬는 미이라가 되어간다.
봄철에는 꽃을 보러 멀리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오고 가는 길가에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손바닥만한 뜰에서, 또는 돌층계 틈에서도 꽃은 핀다. 건성으로 스쳐가지 말고 그 곁에서 유심히 들여다 보라. 꽃잎 하나하나, 꽃술과 꽃받침까지도 놓치지 말고 낱낱이 살펴 보라. 그리고 꽃이 놀라지 않도록 알맞은 거리에서 꽃향기를 들어 보라. 아름다운 세상이 결코 먼데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꽃 앞에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눠 보라. 짐이 훨씬 가벼워지고, 꽃한테서 많은 위로와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물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그 사물을 닮아 간다. 꽃을 가까이하면 꽃 같은 인생이 된다. 이것이 신비스런 우주의 조화다.
누구나 바라는 그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행복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 우러난다. 오늘 내가 겪는 불행이나 불운을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가 곧 불행이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서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은 우리 생각과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순간 그가 지닌 생각대로 되어 간다. 이것이 업(카르마)의 흐름이요, 그 법칙이다.
사람에게는 그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우주가 그에게 준 선물이며 그 자신의 보물이다. 그 특성을 마음껏 발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긍정적인 사고가 받쳐 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마다 잘 풀린다. 그러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되고 일마다 꼬인다.
이 세상은 공평무사하게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진다. 이 귀중한 우주의 선물을 우리는 순간순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긍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는가. 밝은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어두운 마음으로 쓰고 있는지 시시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닌 생각이 우리 집안을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들어간다. 명심할 일이다.
다시 꽃 이야기로 돌아가자.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그 누구도 닮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풀이 지닌 특성과 그 나무가 지닌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다. 풀과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꽃피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들의 분수에 맞도록 열어 보인다.
옛 스승(임제선사)은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서 있는 자리마다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피면 된다.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이런 도리를 이 봄철에 꽃한테서 배우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서 옛 스승은 다시 말한다. “일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다. 다만 억지로 꾸미지 말라. 있는 그대로가 좋다.” 여기에서 말한 ‘일 없는 사람’은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그 일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 일에 눈멀지 않고 그 일을 통해서 자유로워진 사람을 가리킨다. 억지로 꾸미려 하지 말라. 아름다움이란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그만이 지닌 그 특성의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철없는 사람이 꽃철에 철없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내 곁에서 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법정스님 추모소식, 트위터 검색 @buddhistnews
제 목
빛과 거울
일자리 잃으면 일거리를 찾자
법정스님 청와대 비서관들에 法講
흐르는 물처럼 새롭게
물흐르고 꽃피어난다.
있는 그대로가 좋다
한 생각 돌이키니
무 말랭이를 말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다
두타행(頭陀行)
산남종회 규약 -초안
Tuesday, January 25, 2011
대학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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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之道
대학(大學)정말 좋은 책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고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大學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善에 머무름에 있느니라...
위의 3가지 명명덕.신민.재지어선 이것은 대학(大學)의 세강령입니다..
1. 명명덕(明明德)
맹자께서 말씀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불쌍한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사양할줄알고 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네 가지 마음의 단서를 타고났으니 이것이 겉으로 나타나면 곧 인의예지(仁. 義. 禮. 智)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지만 후천적으로 악하게 되는것....
명명 덕이란 이 인의예지와 같은 밝은 덕을 닦고 길러내어 환경이나 욕심으로 말미암아 흐려짐이 없게 함인 것..
2.신민
나의 밝은 덕으로 사람들의 덕을 새로워지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새로워지게 한다라 함은 이제까지 지니고 잇던 악함을 버리고
본래의 선한 본성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한사람의 높은 인격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게 마련
앞에서 본바와 같이 자신의 타고난 밝은 덕을 밝혀 몸에 가득차게 되면
그의 아름다운 덕은 몸에서 넘쳐 흘러나와 가정과 집안에 번지고 이웃과 온 나라에 번지고 나아가서는 온 인류에게까지도 번져나가 모든 사람의 덕을 새로워지게 감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3. 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물라 ..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어선이란 최고의 착함이 아니다
어선이란 하늘의 이치에 가장 당연한 경지 ... 즉
조금도 기울고 치우치거나 지나치고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덕인 것이다
결국 재지어선 이란 이와 같은 중용의 덕에 언제나 머물러 있어 잠시도
여기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위의 세 가지가 大學의 총론적인 강령임..가장 핵심인 것이죠..!!
[제가 좋아하는 글귀 한 구절 적어드립니다..]
소설 丹 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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去去去中知 (거거거중지) -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行行行利覺 (행행행리각) -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
여순 사건과 정신교육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고서 중학교 학생이나 소학교 학생이나 똑같이 한글과 한문을 배우기 시작 했다. 그 다음해 1946년 9월에 군산중학교에 입학 하고서 단독정부수립 반대, 학기말 시험반대, 교장선생 반대, 무엇이든 반대 하는 동맹휴학을 남로당 지령으로 학교가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런 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이였다. 학교 가는 길목 마다 상급생들이 길을 막고서 등교를 저지 하는 바람에 형님이 에스코트 까지 하는 풍경도 벌어지곤 하였다.
1948년 10월 19일에 여수, 순천 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지고 잠시나마, 좌익 반군세력이 여수 순천을 장악 할때 좌익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을 잡아다가 타살한 사건이 신문에 보도 되였는데 그때당시 君師父 一體 라는 교육이염에 반한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아버지께서 는 이런 윤리를 한탄 하시며 너이들은 학교에서 물질교육만 받고 정신교육을 못 받아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너는 나로부터 정신교육을 집에서 받아야 한다고 하시며, 중학교 2학년 겨을 방학 때 小學 과 大學을 익혔다. 그 당시 소학과 대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워야 책을 띠었다고 말 할 수 있었다. 한 달여 만에 두 권의 책을 달달 외웠으니 아버지께서는 상당히 흡족 해하신 기억이 난다. 지금은 머릿속에 남는겄이 별로 없지만--
여수·순천 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C%97%AC%EC%88%98%C2%B7%EC%88%9C%EC%B2%9C_%EC%82%AC%EA%B1%B4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간단히 여순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이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19일,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를 비롯한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주동하고 2,000여 명의 사병이 전라남도 여수군(현재 여수시)에서 봉기함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좌·우익세력으로부터 전남동부지역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부 진압군경이 여순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학살되는 경우가 많았다.[1]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하였다. 과거에는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들여서 1995년부터 여수·순천 사건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Monday, January 24, 2011
四書 大學 편 2-2, 제6장 誠意;--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친족 촌수 한자로 호칭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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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에 대한 나의 기억
현각 스님이 왜 종교을 버리라고 했나!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정치를 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다. 선동가 타입?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글쎄. 정치를 했다면 나의 내면은 죽지 않았을까?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과연 행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