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5, 2011

대학지도


여기에 나오는 이문구는 대학에 첫구절인데 이구절은 나에게 보편적 윤리관 (중용지덕)을 정립 해주는 지주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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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之道

대학(大學)정말 좋은 책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고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大學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善에 머무름에 있느니라...

위의 3가지 명명덕.신민.재지어선 이것은 대학(大學)의 세강령입니다..

1. 명명덕(明明德)
맹자께서 말씀한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불쌍한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사양할줄알고 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네 가지 마음의 단서를 타고났으니 이것이 겉으로 나타나면 곧 인의예지(仁. 義. 禮. 智)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지만 후천적으로 악하게 되는것....
명명 덕이란 이 인의예지와 같은 밝은 덕을 닦고 길러내어 환경이나 욕심으로 말미암아 흐려짐이 없게 함인 것..

2.신민
나의 밝은 덕으로 사람들의 덕을 새로워지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새로워지게 한다라 함은 이제까지 지니고 잇던 악함을 버리고
본래의 선한 본성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한사람의 높은 인격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게 마련
앞에서 본바와 같이 자신의 타고난 밝은 덕을 밝혀 몸에 가득차게 되면
그의 아름다운 덕은 몸에서 넘쳐 흘러나와 가정과 집안에 번지고 이웃과 온 나라에 번지고 나아가서는 온 인류에게까지도 번져나가 모든 사람의 덕을 새로워지게 감화 시킬 수 있는 것이다.

3. 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물라 ..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어선이란 최고의 착함이 아니다
어선이란 하늘의 이치에 가장 당연한 경지 ... 즉
조금도 기울고 치우치거나 지나치고 모자람이 없는 중용의 덕인 것이다
결국 재지어선 이란 이와 같은 중용의 덕에 언제나 머물러 있어 잠시도
여기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위의 세 가지가 大學의 총론적인 강령임..가장 핵심인 것이죠..!!

[제가 좋아하는 글귀 한 구절 적어드립니다..]
소설 丹 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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去去去中知 (거거거중지) -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行行行利覺 (행행행리각) -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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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사건과 정신교육

1945 8 15일에 해방이 되고서 중학교 학생이나 소학교 학생이나 똑같이 한글과 한문을 배우기 시작 했다. 그 다음해 1946 9월에 군산중학교에 입학 하고서 단독정부수립 반대, 학기말 시험반대, 교장선생 반대, 무엇이든 반대 하는 동맹휴학을 남로당 지령으로 학교가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런 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 이였다. 학교 가는 길목 마다 상급생들이 길을 막고서 등교를 저지 하는 바람에 형님이 에스코트 까지 하는 풍경도 벌어지곤 하였다.

1948 10 19일에 여수, 순천 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지고 잠시나마, 좌익 반군세력이 여수 순천을 장악 할때 좌익 학생들이 교장선생님을 잡아다가 타살한 사건이 신문에 보도 되였는데 그때당시 君師父 一體 라는 교육이염에 반한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아버지께서 는 이런 윤리를 한탄 하시며 너이들은 학교에서 물질교육만 받고 정신교육을 못 받아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너는 나로부터 정신교육을 집에서 받아야 한다고 하시며, 중학교 2학년 겨을 방학 때 小學 과 大學을 익혔다. 그 당시 소학과 대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외워야 책을 띠었다고 말 할 수 있었다. 한 달여 만에 두 권의 책을 달달 외웠으니 아버지께서는 상당히 흡족 해하신 기억이 난다. 지금은 머릿속에 남는겄이 별로 없지만--

여수·순천 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C%97%AC%EC%88%98%C2%B7%EC%88%9C%EC%B2%9C_%EC%82%AC%EA%B1%B4

여수·순천 사건(麗水順天事件, 간단히 여순 사건) 한국전쟁 발발 2년 전이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2개월 뒤인 1948 10 19, 중위 김지회, 상사 지창수를 비롯한 일련의 남로당 계열 장교들이 주동하고 2,000여 명의 사병이 전라남도 여수군(현재 여수시)에서 봉기함으로 인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좌·우익세력으로부터 전남동부지역의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부 진압군경이 여순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학살되는 경우가 많았다.[1]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반공주의 노선을 강화하였다. 과거에는 여순반란사건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란의 주체라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들여서 1995부터 여수·순천 사건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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